한양의 중심이었던 조선 왕조 제일의 법궁
경복궁은 1395년에 창건한 조선 왕조 제일의 법궁이다. 북으로는 북악산을 기대어 자리잡았고
정문인 광화문 앞으로 넓은 육조거리 (세종로)가 펼처진 한양의 중심이었다.
1592년 임진왜란으로 전소되고 그후 경복궁은 270여년간 복구되지 못하고 방치되다가 1867년
흥선대원군의 주도로 중건되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때인 1911년부터 거의 헐렸던것을 1990년경부터 본격적으로 복원하여
조선총독부를 철거하고 흥례문일원을 복원했으며 2010년에는 광화문이 원형 복원되었다.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 2010년 원형복원되었다
경복궁 수문장 교대식. 매일 10:00, 13:00, 15:00 에 진행된다.
5월5일 어린이날 13:00 수문장 교대식에 많은 관람객이 모였다
고궁박물관에서 바라본 흥례문 광장
고궁박물관에는 역대 조선 임금들의 연대표와 생활도구들이 진열되었다
근정전을 갈려면 이 근정문을 통과해야 한다. 근정문과 행각은 보물 제812호.
근정전은 경복궁의 으뜸 전각인 법전으로 "천하의 일을 부지런히 하여 잘 다스리다"라는 의미를 담고있다. 궐안에 가장 장엄한 중심건물로 왕권을 상징하며
왕의 즉위식이나 문무백관의 조회, 외국사절의 접견 등 국가적 행사를 치르던 곳이다. 마당한가운데가 약간 솟아있는것은 어도이며 품계석이 양옆에 세워
져있으며 조회시 품계에 따라 않자 조회를 하였다고 한다.근정전은 국보 제223호로 지정되었다.
근정전내부의 용상
측면에서 바라본 근정전
사정전은 왕의 공식적 집무실인 편전으로 왕이 정사에 임할때 깊이 생각해서 옳고 그름을 가려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매일아침 업무보고와 회의, 국정 세미나인 강연
등이 이곳에서 벌어졌다. 보물 제 1759호.
사정전 내부에 임금의 자리와 옆에 판서들의 자리가 있다
강녕전은 왕실의 생활이 묻어 있는곳. 왕고 왕비가 일상생활을 하는 곳을 침전이라고 한다 왕의 침전으로 수,부.강녕,유호덕(덕을 좋아서 즐겨 행하는 일),고종명(명대로 살다가 편안히 죽는 것)의 오복에서 가운데에 해당하는 강년의 의미를 담아 이름이 붙여졌다.
교태전은 왕비의 침전으로 궐안의 살림살이를 총지휘하던 곳이다.
교태전뒤뜰에 아미산이라는 왕비의 후원이다. 계단식 화단과 땅밑으로 굴뚝을 내어 후원으로 뽑아 낸 굴뚝은 보물 제811호이다.
함원전은 궁내의불사를 행하던 곳이다.
경회루,웅장하면서도 아름다운 건축 미학의 절정체이다. 왕이 신하들과 규모가 튼 연회를 주재하거나 외국 사신을 접대하던 곳이다.연못에는 뱃놀이를 즐기고 경회루에
올라 인왕산과 궁궐의 장엄한 경관을 감상하는 왕실의 정원이다.국보 제224호이다
멀리 청와대 뒷산인 북악산이 보인다.
집옥재. 서재와 외국 사신의 접견소로 사용했다
왕의 처소인 장안당
왕비의 처소인 곤녕각
건청궁내에 왕의처소인 장안당, 왕비의 처소인 곤녕각. 서재인 판문각이 있다. 고종이 아버지 흥선대원군의 정치적 간섭을 벗어나려고 지은 자립의 건물이다.
향원정. 보물 제1761호이다
광하문에서 바라본 육조거리. 지금은 세종로이며 세종대왕, 이순신장군의 동상이 있다
광화문 앞에 사자상